가와쓰라 칠기의 역사
History

1193
가마쿠라 시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가신이자 이나니와성 성주였던 오노데라 시게미치의 동생 미치노리 공이 고시오노지리(현재 가와쓰라초 오다테 지구)에 저택을 세우고, 가신들에게 칼집·활·갑옷 등 무구에 옻칠을 하도록 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가신이자 이나니와성 성주였던 오노데라 시게미치의 동생 미치노리 공이 고시오노지리(현재 가와쓰라초 오다테 지구)에 저택을 세우고, 가신들에게 칼집·활·갑옷 등 무구에 옻칠을 하도록 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1615
에도시대 초기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칠기 산업이 시작된 것은 17세기 중반, 겐나(1615년)부터 겐로쿠 시기까지이며, 가와쓰라 마을을 중심으로 약 26가구가 그릇 제작을 생업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칠기 산업이 시작된 것은 17세기 중반, 겐나(1615년)부터 겐로쿠 시기까지이며, 가와쓰라 마을을 중심으로 약 26가구가 그릇 제작을 생업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815
에도시대 중기
번의 허가를 받아 판로를 다른 지역으로 넓혔으며, 에도시대 후기에는 번의 보호 정책 아래 그릇·상·찬합 등 다양한 칠기가 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침금과 마키에 장식 기법이 더해지면서 산업 기반이 크게 확립되었습니다.
번의 허가를 받아 판로를 다른 지역으로 넓혔으며, 에도시대 후기에는 번의 보호 정책 아래 그릇·상·찬합 등 다양한 칠기가 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침금과 마키에 장식 기법이 더해지면서 산업 기반이 크게 확립되었습니다.

1868
메이지 시대
메이지 2년(1869년)의 칠기생산액은 2,000량에 달했다는 번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메이지 29년(1896년)에 가와쓰카무라 칠기동업조합이 발족되었고, 다음 해에 제 1회 품평회가 개최됩니다. 그릇 원목 생산은 '수차식 물레'와 '발판식 물레'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메이지 2년(1869년)의 칠기생산액은 2,000량에 달했다는 번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메이지 29년(1896년)에 가와쓰카무라 칠기동업조합이 발족되었고, 다음 해에 제 1회 품평회가 개최됩니다. 그릇 원목 생산은 '수차식 물레'와 '발판식 물레'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1914
다이쇼 시대〜쇼와 전기
이나니와 수력전기 주식회사의 전력 공급으로 그릇을 만드는 원목 생산방식이 '전동 물레'로 전환되었습니다. 아키타현립 가와쓰라 칠기 시험장이 설치되어 기술 연구와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내각총리대신 사이토 마코토가 시찰을 방문하는 등 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나니와 수력전기 주식회사의 전력 공급으로 그릇을 만드는 원목 생산방식이 '전동 물레'로 전환되었습니다. 아키타현립 가와쓰라 칠기 시험장이 설치되어 기술 연구와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내각총리대신 사이토 마코토가 시찰을 방문하는 등 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1955
쇼와 후기의 고도 경제 성장기
전후의 경제 부흥에 따라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으로서 국그릇이 간토 부근으로 다수 출하되었습니다. 또, 여행 붐으로 활기를 띤 온천지로 상과 그릇의 출하가 증가되고, 쇼와 51년(1976년)에는 국가의 전통적 공예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전후의 경제 부흥에 따라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으로서 국그릇이 간토 부근으로 다수 출하되었습니다. 또, 여행 붐으로 활기를 띤 온천지로 상과 그릇의 출하가 증가되고, 쇼와 51년(1976년)에는 국가의 전통적 공예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96
헤이세이 시대
1996년에는 아키타현의 전통적 공예품에도 지정되었고, 1998년과 2000년의 전국 칠기전에서는 내각총리대신상을 수상했습니다. 견고함을 자랑하는 실용적인 그릇으로서 서민생활에 밀착하며 지역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6년에는 아키타현의 전통적 공예품에도 지정되었고, 1998년과 2000년의 전국 칠기전에서는 내각총리대신상을 수상했습니다. 견고함을 자랑하는 실용적인 그릇으로서 서민생활에 밀착하며 지역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9
레이와 시대(현재)
산지의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와쓰라 칠기의 정의와 이념을 공유하며 발전 방향이 마련되었고, 인지도 향상을 위한 산지 마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앞으로의 100년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산지의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와쓰라 칠기의 정의와 이념을 공유하며 발전 방향이 마련되었고, 인지도 향상을 위한 산지 마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앞으로의 100년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